【후생신보】 보건의료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진단의 출발점인 검체검사 수가 체계가 10년 넘게 정체된 상태로 의료현장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검사비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병원 내 검사실 폐쇄나 외주화가 급증하고 있으며, 필수검사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검체수가 문제를 공공의료 지불혁신의 핵심과제로 보고 원가 기반의 단계적 개편을 추진 중이다.
■ “현장 실태와 수가 괴리 너무 커”…검사실 운영 ‘적자 악순환’
현행 건강보험 검체검사 수가는 대부분 2015년 상대가치 개편 당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후 인건비 상승, 장비 유지비, 품질관리비가 급등했지만 수가는 제자리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기본 혈액검사 한 건당 보험수가가 1,500원 남짓인데, 검사 인력 인건비와 장비 소모품을 감안하면 실제 원가는 최소 2,200원 이상”이라며 “검사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검사 외주화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에 따르면 중소병원 3곳 중 2곳이 주요 검체검사를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병원은 24시간 응급검사조차 외주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한 지방의료원 관계자는 “응급 혈액검사 장비를 유지할 예산이 없어 야간엔 검체를 타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며 “응급환자 진료가 늦어지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 복지부, “검체수가 전면 재정비”…지불혁신 과제로 편입
보건복지부 공인식 건강보험지불혁신추진단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검체검사 수가체계는 오랫동안 기술변화와 현장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검사 난이도, 인력 투입도, 품질관리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모델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공 단장은 또 “검체 분야는 의료 질 평가 및 가치 기반 지불제도의 적용이 가능한 영역”이라며 “단순 행위별 수가 조정보다, 성과와 품질 중심의 새로운 보상체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현재 심사평가원과 함께 ‘검체검사 원가조사’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중 개선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주요 검토 항목은 ▲검사 난이도별 단계 구분 ▲품질관리 비용 반영 ▲AI·자동화 기술 적용 비용 인정 등이다.
■ 학회·병원계 “부분 인상으론 한계…근본적 구조조정 필요”
의료계는 단순 항목별 수가 인상으로는 한계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신명근 이사장은 “지금의 수가 구조는 검사 난이도나 인력 투입, 장비 의존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전체 구조를 기술 기반 분류체계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예를 들어 분자진단검사나 감염병 관련 PCR 검사는 고가 장비와 숙련 인력이 필요하지만, 단순 생화학검사와 거의 같은 수준의 수가가 적용된다”며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으면 첨단검사 기술의 발전이 의료현장에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병원협회 관계자도 “검체검사 수가 문제는 단순히 진단검사의학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진료의 품질과 직결된다”며 “검사 정확도가 낮아지면 불필요한 재검사, 오진, 추가치료 등으로 의료비 낭비가 커진다”고 말했다.
■ 원가 반영 + 품질 보상, 새 수가모형 논의
복지부와 심평원은 새로운 검체수가 체계의 핵심으로 ‘원가 기반 + 품질보상’ 이중구조 모형을 검토 중이다.
기본 원가를 보전하는 ‘기준수가’ 위에, 검사 정확도와 품질관리 인증 수준에 따라 가산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확도 평가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가산을 적용하고, 부적합 시 감산하는 품질 인센티브제를 검토 중”이라며 “검사기관 간 품질경쟁을 유도하고, 환자 안전 중심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 “검체검사, 필수의료로 인식 전환해야”
전문가들은 검체검사가 국민건강의 기초 인프라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려왔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국립대병원 교수는 “질병 진단의 70% 이상이 검체검사 결과에 의존한다”며 “수가 현실화는 단순히 의료기관 재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보건안전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감염병 대응과 만성질환 관리 등 국가보건사업에서도 정확한 검사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검체검사를 ‘필수의료 항목’으로 법적·제도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 협의체 구성…2026년부터 단계적 시행 목표
복지부는 진단검사의학회, 병리학회, 병원협회 등이 참여하는 검체수가 개선협의체를 통해 올해 말까지 개선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내년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본격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인식 단장은 “검체검사 수가 개편은 단순 인상 문제가 아니라, 의료현장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공공의료 질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이라며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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