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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의 원칙들 – 악행금지의 원칙(1)

후생신보 | 기사입력 2015/08/12 [10:27]

의료윤리의 원칙들 – 악행금지의 원칙(1)

후생신보 | 입력 : 2015/08/12 [10:27]
▲ 이충기 교수(영남의대)    

‘우선 해를 입히지 말라’는 말로 대변되는 악행금지의 원칙은 전통작 의료 윤리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악행금지의 원칙은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선행의 원칙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단순하지 않으며, 더욱이 절대성, 우선성을 반드시 갖고 있지는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고 ‘해롭고 유해한 것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우선’ 또는 ‘무엇보다도’라는 단어는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의료윤리에서 간혹 ‘우선적으로’, ‘무엇보다도’라는 뜻이 첨가되어 해룰 입히지 않는 것이 환자를 이롭게 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도덕철학 내에서 일치된 견해는 아니며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사람을 이롭게 할 의무보다는 해를 입히지 않을 의무가 더 엄격하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다.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의무는 성취할 수도 없고, 일부만을 도울 수 있을 뿐이기에 불완전한 의무인데 반해서, 의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완전한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선행의 의무가 아닌 악행금지의 의무를 가진다는 것은 개연성이 있지만, 이것이 곧 악행금지가 선행에 우선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에게 더 큰 유익을 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해를 입히거나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는 예방접종의 경우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기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경험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 또한 재산에 비례해서 부과되는 세금은 더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납세자들에게 해를 입힌다.

 

악행금지의 우선성을 주장하기 위한 이론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중효과이론’, ‘행위와 비행위’, ‘일상적인 치료가 특별한 치료에 우선 한다’, ‘행동하는 것보다 허용하는 것이 우선 된다’, 그리고, ‘부정적 의무가 긍정적 의무에 우선 한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이론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이 시점에서는 악행금지의 우선성은 상당한 정도의 제한조건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임상진료의 다양한 경우에 선행과 악행금지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의학의 도덕적 목표는 선행을 하고 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행위에서 해는 이익을 얻기 위해 필요할 수 있고, 이익을 위해 해를 감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발에 암(cancer)이 있을 경우에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발을 절단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선행과 악행금지를 같이 고려하고 저울질해야 한다. 이럴 경우 악행금지의 원칙이 의학적 결정을 지배하는 우선적 원칙이 된다면, 선행과 악행금지를 비교하여 선택하는 것이 금지될 것이며, 해를 입힐 수 있는 치료는 중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악행금지의 원칙은 매우 중요한 원칙임에는 틀림없으나 절대적인 도덕원칙이 아니며 다른 원칙과 충돌할 때 언제나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선행의 원칙에서 이야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악행금지의 원칙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 및 정의의 원칙과 충돌할 수도 있다.

 

<손익을 저울질하기>

의료윤리에서 ‘악행금지의 원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환자를 이롭게 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환자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비교해서 저울질할 때도, 선행의 원칙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자신의 손해를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따라서 악행금지의 원칙을 적용할 때 환자가 생각하는 손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제한 조건 역시 앞서 말한 공리주의나 칸트의 의무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를 할 때 종종 환자에게 해를 입혀야 하는데, 이것은 환자에게 이익을 주려고 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한편 의사들은 환자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에게 의도한 이익이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손해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때 손해는 의사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사회에서도 평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악행금지의 원칙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며, 의사들에게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절대적으로 우선되는 의무가 아니라 다른 의료 원칙과 관련되어 고려되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악행금지의 원칙에 실제 의료행위에서 적용되는 몇 가지 예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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