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의사도 국민입니다

관리자 | 기사입력 2014/03/20 [10:54]

의사도 국민입니다

관리자 | 입력 : 2014/03/20 [10:54]

▲ 노태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의사들이 어떤 일로든 단체행동을 벌이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며 벌이는 일은 더구나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변화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고 또 상당히 순응적이다.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매우 보수적이며 싸움과는 잘 어울리지 않은 보통은 순한 사람들이다. 사회경제적 위치가 그래도 안정적이며, 길고 독특한 의학교육, 다루는 대상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생명이란 점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태도가 형성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사가 파업이든 휴업이든, 불 보듯 뻔한 비난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단체행동을 벌인다면 한번쯤은 마음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1980년 충북과 강원 접경의 산골마을 보건지소에서 6개월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전문의시험을 보려면 무의면근무가 의무적이라 모든 전공의 기간 중 6개월간 국가명령으로 오지의 무의촌에서 거주하며 일해야 했다.
 
충북중원군 소태면. 충주에서 버스가 하루 서너 번 들어오는 곳, 면소재지이지만 장은 커녕 그 흔한 다방이 한 곳도 없을 정도의 오지였다. 그러나 그래 봤자 충주나 원주에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거리다. 사실 말이 무의면이지 종합병원만도 여럿이 있는 도시와 한 두 시간 떨어진 곳을 어찌 무의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그 정도의 무의면에도 이미 30년 전부터 의사가 종일 일하고 있어 이미 그때부터는 무의면도 아니다. 원격진료는 벽오지에 너무 멀리 떨어진 환자가 의사진찰 받기가 어려워 영상으로 진료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필요가 있는 오지가 과연 얼마나 될까?
 
또 진료는 영상이나 전화로 받고 약을 사기위해 다시 약사가 있는 도회지로 나와야 한다니 거기엔 의사도 있을진대 참 어이없다. 의료는 차세대 산업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먹거리로 등장할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정작 원격진료는 IT를 의료에 활용하는 스마트케어의 가장 변방 즉 꼬리에나 해당 될 터인데 꼬리가 몸통을 휘두르는 격이다. 원격의료가 그렇게 시급한 일인가? 논란이 크면 잠시 접어두고 의료산업의 다른 분야에 우선 집중하면 어떨까 싶다.
 
‘비정상의 정상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만이 정상이라는데 있다. 듣기도 싫고 말하기는 더욱 싫은 돈 이야기를 해보자.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고, 말을 꺼내는 것이 마치 구걸이라도 하는 것 같아 싫다. 그러나 왜 병원이 의사가 죽도록 일을 해도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낳은 설명도 없다.
 
필자는 부정맥을 전공한 연유로 우리나라의 심폐소생술을 제정 보급 교육하는 대한심폐소생협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많은 의사에게 심폐소생술을 직접 지도하고 있으며 위험에 빠진 생명을 구하는 일에 일조한다는 커다란 보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심폐소생술의 수가가 고작 7만 4천원이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의 가격이 얼마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만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자부심을 갖는 의료행위가 가격으로 치면 고급식당 1인 한 끼 가격이라니 좀 참담하기까지 했다.
 
그 날 SNS에 올린 글이다. “의사 간호사 합해 최소 대여섯 명이 모여 한 시간 동안 그 커다란 심리적 중압감 속에서 일하는 가치가 돈으로 환산하면 7만 원 정도라니... 차라리 수가가 없으면 일이 더 떳떳하겠습니다.” 병원은 수도원이 아니다. 남는 돈이 있어야 환자를 위한 좋은 시설을 제공하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해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직원을 고용해 급여를 줘야 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당연히 수혜자가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게 정상이다. 그런데 실비조차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서 비급여로, 특진비로 알아서 벌어 벌충하라는 것이 정상인가? 꼬일 대로 꼬여 끝이 어디인지도 찾기도 어렵겠지만 정상화시켜야 한다. 누른다고 덮는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이야 말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 밟고 가야만 하는 일이다. 아픈 이야기지만, 받고 싶은 만큼 내야한다.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은 이른바 빅5 병원으로 전국적으로도 환자가 많은 병원에 속한다. 어떨 때는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대기시켜야 하니 심장병을 돌보는 의사입장에서 불안하기도 하다. 여느 병원과 같이 우리병원에서도 많은 의사들이 성실히, 열심히 일한다. 사실 더 열심히 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도 병원은 어렵다. 작년에 빅5중 4개 의료원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갑갑함은 누군들 다를까. 이렇게 해도 어렵다니 병원이나 의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둘 중 하나다. 더 많은 환자에게 더 고가의 진료를 해서 수익을 올리거나 아니면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전자는 한계에 달했을 뿐 아니라 나라전체의 의료를 생각할 때, 또 의료윤리를 고려할 때, 답이 아니다. 이걸 알면서도 의사는 ‘병원 구하기’에 나설 위험이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지만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쥐를 몰아도 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몰아야 한다. 나머지는 비용인데, 의료를 좀 들여다 본 이들은 특히 의사비용을 줄이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의사급여를 절반으로 줄이면 몇 년 이 상태로 버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게 실현가능하며 지속은 가능한 일인가? 또 온당하긴 한 것인가? 어느 변호사가 의사의 급여를 어느 수준으로 정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말을 한 적이 있다. 의사비용의 원천이 국민인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이므로 이를 사회가 결정하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렇다면 변호사급여 결정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 없을까? 의사와 달리 법조인이야 말로 교육과정 중 일부를 국민세금으로 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비용의 원천이 국민이 아닌 직종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다.
 
의사에게 반감을 가진 많은 이들이 의사에 대해 하는 말은 대개 이렇다. 똑똑할지는 몰라도 ‘행동이 유치하고 고집이 세다, 사회 친화적이 아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미숙하다’고 까지 이야기한다. 동감이다. 혹시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런 의사의 사회적 미숙함이 환자에게 해가 될까 득이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의사가 직업적 행동을 결정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환자의 안위다. 믿어 달라. 사실이다. 의사는 긴 교육과정을 통해, 환자의 신분과 지위, 경제적 위치와 상관없이 당대에 존재하는 최고 최상의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만을 배워온 이들이다. 의학교과서가 권하는 대로,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보험에서 제한해 그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아픔인 것이다. 그네들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교과서대로 진료하게 해 달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고는 있는지. 진료비삭감이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그 진료를 고집하는 면에서 의사의 고집은 환자의 권리보호자인 셈이다.
 
그런데 의사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진정성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인가에 눈뜨기 시작했다. 머리 좋은 의사가 기름칠한 듯 매끄러운 말솜씨에, 속을 알 수 없는 친절과 마케팅 실력으로 무장하고, 뒤에는 정치력을 갖춘 의사단체를 배경으로 조용히 환자의 이익이 아니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방향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문가는, 높은 윤리의식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스스로 일을 결정하며, 일에 만족하고 살아야한다. 이 땅의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또 그네들이 그렇게 살게 해주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도 옳다.
 
결국 파업에 도달했다. 아직 사회성도 정치력도 모자란 의사가, 더구나 이런 싸늘한 환경에서 정부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의사는 다시 한 번 실망하고 좌절할 지도 모르겠다. 또 희생자도 생길 것이다. 이미 의협회장은 ‘나를 넣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바깥세상 이치를 잘 모르는 백면서생 의사들이 무서워 떨면서도 투사로 변신할 때에는, 밥그릇 문제가 아닌, 전문가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안’ ‘면허취소’로 겁박만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라앉을지언정 없어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또 올라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털건 털고 가야한다.

스마트폰이 계속 우리를 먹여 살리기는 불가능하다. 미래의 먹거리후보 중 눈에 보이는 것은 그나마 의료다. 의사 없이 기업과 정부만으로 의료산업을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봄이 오고 있다. 격정을 갈아 앉히고 한걸음 쉬어가자.
 
마지막으로, 의사도 표를 가지고 있으며 세금도 내고 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기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