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3

| 기사입력 2004/09/23 [14:40]

이성진의 망막이야기 -23

| 입력 : 2004/09/23 [14:40]
 
누군가가 거꾸로 발라놓은 벽지


 ‘아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벽지가 거꾸로 발라진 것 같아요. 총을 거꾸로 잡고 쏘는 것 처럼이요’ 벽지가 거꾸로 발라져 있고, 총을 거꾸로 잡고 쏜다... 벽지가 거꾸로 발라졌다는 말은 벽지의 앞뒤가 뒤집어진 채 발라졌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만...
 
 흠... 이 총처럼 말인가요? 지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저도 12년 전 처음으로 눈 속에 벽지처럼 발라져 있는 망막의 구조를 배웠을 때 이 총처럼 뭔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먼저 아래 그림을 보시면 눈 안에 들어온 빛을 가장 먼저 시세포(추체와 간체, cone & rod cell)가 받아들인 후 그 신호를 뒤쪽의 거미(신경절세포, ganglion cell)에게 전달합니다.
 
 그런 후 거미에게서 나온 거미줄(시신경섬유, nerve fiber)들이 망막의 뒤쪽에서 만나 시신경(optic nerve)을 형성하여 뇌로 들어간다는 구조인데요 그렇게만 된다면 방향도 최단거리로 자연스럽고, 신호의 소실도 거의 없을 것 같아 매우 효율적일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말 이상합니다. 먼저 빛이 눈 속에 들어오면 망막의 8개나 되는 층을 뚫고 지나가야 9번째 층에 있는 시세포에 도달합니다. 그런 다음 앞쪽에 있는 거미에게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방향을 180도 틀어서 왔던 길로 도로 나갑니다. 게다가 망막의 앞쪽에 있는 거미줄이 시신경으로 들어가려면 방향을 또 한번 180도로 틀어서 맹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도킨스(dawkins)라는 학자가 ‘눈 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1986) 이라는 책에서 척추동물이 되면 누군가가 일부로 벽지를 탁 뒤집은 것처럼 거꾸로 발라진 망막에 대해 ‘잘 계획되지 않은 진화의 모습’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아 사람의 망막의 구조가 왠지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는 의견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원래 그렇게 생겼으니까 그런 거겠지’라고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질문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사람과 같이 거꾸로 된 벽지가 발라져 있는 생물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흥미롭게도 그 경계는 척추동물이냐 아니냐에 있었습니다.
 
 즉 문어나 오징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무척추동물에서는 망막이 똑바로 붙어 있을 뿐 아니라 두 가지 세포뿐이 없는 매우 간단한 구조를 보였스니다. 그러나 척추동물에서는 대부분 망막이 거꾸로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의 차이점을 알면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데요. 혹시 햇빛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요?
 
 거니(gurney)라는 학자가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음지에서 사는 무척추동물과 달리 양지에서 사는 척추동물은 햇빛을 보며 살아갑니다. 빛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그 속에는 망막에 해를 줄 수 있는 요소들도 숨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막에는 보호 장치가 꼭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 망막이 거꾸로 붙어있다는 견해입니다.
 
 거니가 말한 빛에 대한 보호장치를 한 번 알아볼까요?
 
 첫째로 ‘빛에 의한 열’입니다. 시세포가 빛을 받을 때 생기는 열을 식힐 수 있는 맥락막(choroid, 망막 아래에 그물처럼 되어 있는 혈관층)이라는 냉각수가 망막 아래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가까운 위치가 좋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짧은 파장의 빛’입니다. 푸른 색과 같은 짧은 파장의 해로운 빛이 망막의 8개의 층을 뚫고 들어올 때 제아산틴(zeaxanthin)과 같은 황색소(xanthophyll)에 의해 걸러지겠죠.
 
 셋째로 ‘빛의 부산물’입니다. 시세포에 있는 광디스크(disc)가 빛을 받아서 일을 하고 나면 세포에 해로운 물질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쓴 광디스크는 망막의 10번째 층에 있는 망막색소상피(retinal pigment epithelium)가 대신 먹어서 없애주고 있고 시세포는 새로운 광디스크를 만듭니다. 이처럼 항상 새로운 광디스크를 평생 준비하려면 10번째 층에 붙어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궁금증이 좀 풀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더라도 그것은 망막의 보호장치와 관련될 것으로 보이구요.
 
 결국 벽지가 거꾸로 발라진 것은 정보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망막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을 위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더 잘 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망막을 건강하게 보호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결국 벽지를 거꾸로 바르기로 한 것입니다.
 
▲ 이성진 교수<순천향의대 안과학교실>
 밤에 한산한 거리에서 붉은 신호등을 기다리는 기사님처럼, 집에 일찍 들어가서 오랫동안 자녀들과 애들처럼 놀아주는 아빠처럼, 회사경영이 어렵지만 직원들의 고충을 더 들어주는 사장님처럼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뭔가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인 행동 그 속에는 진정 소중한 것에 대한 깊은 배려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미소가 옆에서 한마디 합니다. ‘난 누가 벽지를 거꾸로 발랐는지 알지-요.’ ‘누군데?’ ‘언니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아빠!’ ‘정답, 하하하하...’ 누군가가 거꾸로 발라놓은 벽지를 교훈삼아 될 수 있으면 자주 집에 일찍 들어가서 부자연스럽고도 비효율적인 아빠가 되어야겠습니다.  
/ www.retina.co.kr
Tag
#망막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망막이야기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