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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82

관리자 | 기사입력 2013/08/22 [13:26]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82

관리자 | 입력 : 2013/08/22 [13:26]

7시에 진료하기

포도막염 때문에 안과를 방문한 한 젊은 친구가 “선생님, 혹시 아침 일찍 진료를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 전에 간신히 들어간 직장을 빠지기가 좀 미안해서요.” 했습니다. 포도막염은 몸의 면역이 약해졌을 때 눈 속에 생기는 염증을 말합니다. 시력도 떨어지고, 충혈도 되고, 통증도 생깁니다. “몇 시면 좋겠어요?” “8시에 진료를 보면 출근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아침형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저녁형 청년이 되었다가 이제 밤형 장년이 되고 보니 아침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신선한 새벽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 속에 염증이 다 생겼을까 하며 “그럼 다음 주 8시에 봅시다. 산동제를 넣고 30분 정도 기다려야 되니까 7시 반 쯤 오세요.” 했지요.

약속된 진료 시간에 그 친구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는지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9시 진료를 7시로 당겨보면 안 될까... 실명의 기로에 서서 두려워하고 있는 환자에게 복잡한 망막질환을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진료시간이 길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환자에게는 기다림도 괴로움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진료를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교수님의 예약시간만 9시 이전으로 당기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전체 예약시간을 당기면 혼란이 올 것 같아요. 고민 좀 해 봐야겠지만...” 새 전산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 전산실 직원의 답변이었다. “진료 30분 전에 산동을 시작해야 하니까 포천에서 오는 간호사는 5시에 집을 나서야 한대요. 그리고 근무를 일찍 해도 따로 보상규정은 없어서 노조와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외래간호과장의 만류가 있었습니다. “우리 과도 밤 9시까지 검사하고 진료를 한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해 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나는 보람이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힘들어 한다고.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말거야.” 동료 교수의 충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런 말을 들을수록 조기 진료를 원하는 직장인들과 지방으로 일찍 내려가고 싶어 하시는 어르신들이 눈에 더 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몇 번의 과 회의를 열었지요. “우리는 환자를 돕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조기진료는 환자 설명에 도움이 되며, 최근 늦게 끝나는 진료시간을 정시에 마칠 수 있습니다. 한 번 3개월 정도 시작해 보고 저울을 다시 달아보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호소했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이 동의를 했으며, 머리를 맞대고 효과적인 조기진료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오시는 환자분들에게 1회용 산동제를 미리 드리고, 진료일 아침에 넣고 오게 하면 산동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전산실과 간호과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윗선의 설득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접수와 계산을 위해 원무과 직원에게 일찍 출근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조기진료 전화예약을 위해 콜센터 직원에게도 따로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병원운영위원회 회원들에게 조기 근무에 대한 반차 보상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해야 했습니다.

눈 속 염증이 좋아졌을 때 그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불편한 것 없었어요?” 내심 좋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침에 문을 연 약국이 없어서 약을 못 샀어요.” 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다시 병원 주위 약국을 다니면서 일찍 열어줄 수 없는지 문의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약국이 30분 정도 일찍 문은 열 수 있지만 다른 약국의 사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더 일찍은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던 끝에 이렇게 했습니다. “8시 이전에 오신 분들은 저희가 약을 사서 택배를 해 드리겠습니다.”

‘7시에 진료하기’라는 단순한 생각은 수개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민폐(?)였습니다. 지난달에 6개월이 다 되었고, 다음 주에 과 전체회의에서 저울을 달 예정입니다. 좋은 병원이란 환자와 직원 모두 만족스러워 하는 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7시에 진료하기’가 어떻게 저울에 달릴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이번에 우리 안과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안과로 한 발 다가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직원들이 힘들다면 7시 진료를 포기하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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