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43

관리자 | 기사입력 2012/09/10 [08:57]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43

관리자 | 입력 : 2012/09/10 [08:57]

세상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1) 희한한 만남

우리 안과는 정말 작았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대학병원 안과였을 것입니다. 38평의 공간을 38년 동안 이리저리 금을 긋고 나니 검사실들은 겹치고 작아졌습니다. 검사장비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바닥에 깐 신문지를 계속 반으로 접으면서 신문지 외의 땅을 밟지 않고 버티는 게임처럼 묘기를 부렸습니다. 어떤 환자가 제게 “안과가 창고 같아요.” 했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모두 창고로 모여!” 했지요.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지방 출장을 가던 중에 차가 과열되어 가까운 카센터를 찾았다. 차를 점검하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다. 주변에 마땅히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는지 두리번거리자 카센터 사장은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슈퍼마켓이 있다고 했다. 음료수나 한 잔 마시자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 슈퍼마켓은 매우 작았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집 주위에는 이상하리만큼 아주 커다란 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집 간판은 이러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마치 동네 씨름에서 이긴 꼬마가 ‘나는 천하장사’라고 하는 꼴이라 웃음이 피식 나왔다.

슈퍼마켓에 들어서자 남자 직원 하나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나도 눈 인사를 했다. 진열장은 깨끗하게 정리되어있었고, 각기 그 종류마다 필요한 것들이 세 개씩 놓여있었다. 과자도, 빵도, 우유도, 작은 공구도, 심지어는 못도 그러했다. 누가 세 개를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에도 그럭저럭 맞았다. 심지어는 다른 품목을 보게 되면 과연 이 주인은 어떤 것 세 개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거 참 재미있군.’ 속으로 생각했다.

“다 보셨나요?” 직원이 물었다.

“아. 예. 작지만 정리가 잘 되어 있군요.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저 시계가 맞는 건가요?”

큰 벽시계는 벌써 여기에 온 지 두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여기에 처음 오셨죠?”

그저 한 번 쑥 둘러본 것뿐인데, 두 시간이나 지나가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그저 세 개씩 있었을 뿐이었고, 그것을 확인했던 것뿐이었는데.

“혹시 마음에 드시는 물건이 있었는지요?”

“혹시 손전등이 되는 라디오가 있나요? 손으로 돌리는 자가발전이 되면 더 좋습니다만.”

예전부터 한적한 곳에 낚시를 갈 때면 이런 물건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큰 백화점이나 상점들을 찾아갔지만 구하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이런 작은 슈퍼마켓에 있을 리 없겠지.’ 속으로 막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직원은 뒤쪽의 작은 쪽문을 열고 나갔다. 그 쪽문은 매우 작아서 직원이 거의 몸을 90도 이상 구부려야 했다. 직원은 잠시 후 뭔 가를 들고 와서는 진열대 위에 펼쳤다.

“혹시 이게 맞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원했던 그 기능을 가진, 크기와 모양이 다른 세 종류의 제품이 눈앞에 있었다. 직원이 잠시 각각의 특징을 설명하는 동안 나는 멍하니 충격에 빠졌다.

“모두 주세요.”

출장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나서기는 했지만 뭔가에 홀린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 바깥에서 고개를 돌려 질문을 던졌다.

“이 가게가 언제부터 있었나요?” “아주 오래 전부터요. 제가 오기 전 아주 오래 전이에요.”

카센터 사장이 세차까지 해 놓았다.

“좀 늦으셔서 차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 말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겠지만 대뜸 내 입에서 “그 가게 좀 이상해요.” 라는 말이 귀신에 홀린 듯 튀어나왔다.

“아. 네. 그래서 저도 그곳에 가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그곳에 가면 제가 좋아하는 자몽 뿐 아니라 제게 필요한 것들이 다 있거든요. 요즘 어디서 자몽을 구하겠어요.”

자몽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일 중에서 짠맛을 뺀 모든 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계산서에 있는 것 보다 큰돈을 쥐어주고 차에 올라탔다. 카센터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는 부드럽게 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큰’과 ‘슈퍼마켓’이란 간판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도저히 연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두 단어는 그 곳에서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 후 뒤를 돌아보니 이제 가게는 너무 작아져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나무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망막이야기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