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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일상>아빠에게 전화 한통 해도 돼요?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윤병기 기자 | 기사입력 2023/11/17 [09:32]

<수술실 일상>아빠에게 전화 한통 해도 돼요?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윤병기 기자 | 입력 : 2023/11/17 [09:32]

【후생신보】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시간 전화가 울리고, 서둘러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새벽 시간 병원으로 가는 길은 30분이면 충분하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시간은 자꾸 지체되고, 혹여나 환자가 먼저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애꿎은 액셀을 자꾸만 밟았습니다.

 

▲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다행히 환자보다 먼저 도착해 수술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립니다. 빠르게 다가가 구급 침대를 잡고 수술실로 들어가며, 환자의 머리에 수술 모자를 씌어주었습니다. 

 

환자는 하얀 얼굴에 입술까지 창백했고, 정돈된 눈썹과 깨끗한 피부, 앳된 여대생으로 보였습니다. 그때 주치의는 수술에 필요한 중요한 동의서를 응급실에서 보호자에게 받았고,  마취과 선생님이 마취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던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불안해하는 환자와는 달리 그 환자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했고, 눈동자의 흔들림도 없이 마취 과 의사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똑 부러 지는 대학생같은데, 이렇게 생존율이 낮은 수술을 받게 된 사실을 알고는 있는걸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수술을 받게 된 젊은 환자에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체할 수 없는 수술이기에 서둘러 수술 방으로 이동하는 그때, 그 환자는 나를 보며 갑작스레 말했습니다. 

 

“아빠한테 전화 한통 해도 돼요?” 처음 들어보는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전화기도 없을 뿐더러, 초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현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 환자는 끝내 아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아빠 또한 딸의 마지막을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한동안은 그 환자의 유언처럼 남긴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젊은 나이 대의 환자들이 수술이 잘 끝나 회복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가슴 위에 돌덩이 하나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무리해서 라도 전화 연결을 했어야 했을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가득한 날이면, 냉장고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잊으려 애써봅니다. 하지만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빨개진 눈으로 지나가는 의료진을 쳐다보던,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와 딸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최선의 선택이었다는것을 깨닫기 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날의 순간이 기억에 남아 비오는 날 출근하는 길이면 생각납니다.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듯이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마음이 쓰이는 힘든 순간들도,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는 날도, 누군 가에게 상처를 받는 날도 있습니다. 수많은 선택을 통해 자아가 만들어 진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엄마로서,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다양한 역할들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통해 지금도 나만의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타협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한층 더 성숙한 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수술실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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