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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일상> 수술실 점심시간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윤병기 기자 yoon70@whosaeng.com | 기사입력 2023/09/21 [07:00]

<수술실 일상> 수술실 점심시간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윤병기 기자 | 입력 : 2023/09/21 [07:00]

【후생신보】 숨쉴틈없이 일하다 보면, 늦은 식사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수술에 참여하다 보면 어느새 배꼽시계의 알람이 울리고서야 점심시간임을 알게 됩니다. 서둘러 식당으로 올라갑니다. 수술실에서의 식사시간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술 상황에 따라 끼니를 거르는 일도 많은 곳이기에, 식사 후 정수기앞에 서서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고 들어가는 날은 저에게 운이 좋은 날이었으니까요. 

 

▲ 강남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이정화 간호사    

수술실에서는 외부식당으로 이동하는 시간조차 줄이기 위해 수술을 참여하는 사람들만 이용가능한 수술실식당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얼마전까지 수술실만 담당하던 터줏대감 식당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배고픔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던 날, 온종일 서있던 나의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식당으로 갑니다. 식당으로 들어오는 저의 모습만 봐도 저의 오전 시간이 짐작이 되시는 듯 안쓰러운 마음으로 인사해주십니다.

 

“ 정화선생님 ~ 오늘은 좀 지켜보이네요~ 힘들었어요?” 하시며 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늦게 온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국을 먹이고 싶으시다며, 언제나 온도를 확인하시는 그 분의 섬세함, 다정 다감한 인사와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은 저에게 힐링이었습니다. 수술실식당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자 애정 어린 관심을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간호사 뿐만 아니라 가끔 오시는 교수님들의 식습관을 모두 파악하고 계셨는데, 예를 들면 위수술을 받으신 선생님께 적정한 식사량과,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준비해 주시는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들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물어본적도 없으셨는데, 알아서 척척 !!

 

“선생님 국물많이 드릴께요.” 

 

“야채는 빼드릴께요.” 

 

“이건 좀 매운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수술실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식습관을 대부분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선생님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직원카드를 찍을때 마다 얼굴과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그녀의 관심 또한 노력으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쁜 수술실에서 잠시 식사를 하러 온 저에게 따뜻한 한마디는 저에게 힐링이었고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업무를 힘내서 할수 있는 응원이 되었습니다. 

 

이 짧은 순간 저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 할 뿐 아니라 따뜻한 관심으로 힘을 얻었었습니다. 혼자서 준비하시는 그 바쁜 와중에도, 식구처럼 챙겨주시는 따뜻한 관심은 저에게 다시 힘내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수술,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싶던 날에도 기어코 식당으로 올라가 직원카드를 찍던 저는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받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숨쉴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가끔 비참함일때도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지만 허무함으로 가득차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나도 모르게 아주 가까운 곳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없이 출근한 날, 반갑게 인사를 건내시는 선배님들, 힘들어 하는 나를 말없이 도와주는 후배들은 저에게 깊은 심호흡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곤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그 시절 식당아주머니를 떠올리며, 식당이라는 공간에서 느낀 좋은 기분, 그 기억들이 수술실에서 보내는 삶의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규시절 아침 끼니를 거르는 저에게 매일 가벼운 식사를 챙겨주던 선배, 나이트근무를 하면서 따뜻한 컵라면과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던 선,후배들과의 추억, 울고 웃으며 보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지금 이순간이 다시 돌아 올수 없는것 처럼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추억들과 응원으로 채워진 시간들이, 수술실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자, 저의 삶의 일부입니다.

 

사소한 친절과 웃음을 나누면서 일상을 채워가다보면 누군가의 추억의 순간에 머물수 있습니다. 저에게 식당아주머니에게 받았던 따뜻한 관심이 수술실에서 보내는 삶의 일부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식당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지친 하루를 보낸 서로를 위해 응원을 나누는 시간들로 채워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수술실 식당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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