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신보】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를 진료하고 분만을 해야 하는데 왜 소송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대학병원 교수는 더 이상 후배들에게 산부인과를 지원하라고 권유하지 않은지가 오래됐고 이제는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후배들을 말려야 하는지 고민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산부인과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분만 관련 의료소송에서 의사 과실이 없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 배상책임 제도가 정착이 되어있는데 우리나라는 산부인과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산부인과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사와 환자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고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억 5,000만원에서 시작해 14억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가 5,000만원으로 최종 합의’ 산부인과 의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산모를 응급처치 후 전원 했지만 장애를 가지게 되자 산부인과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이다.
산모는 응급처지에도 불구하고 불행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된 사건이다.
최근 신생아 뇌성마비 관련 12억원 배상 판결이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대한산부인과학회, 산부인과 개원가 등에서는 분만 인프라 구축과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월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해서는 보상 재원을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와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분만 인프라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에 지난 15일 국회 박물관에서는 최재형, 신현영 국회의원과 전국 고위험 산모 신생아 통합치료센터 협의회 주최, 대한산부인과학회 주관으로 열린‘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소송의 현실’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무과실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3억 5,000만원→14억 5,000만원→5,000만원 최종 합의’
이날 토론회에서 예진산부인과의원 오상윤 원장은 분만 관련 의료소송의 경험을 발표했다.
오 원장은 “지금까지 26년간 분만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사고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며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소송에 휘말리면 정신이 없어진다”고 밝혔다.
산모 진료와 분만을 열심히 하는 의사들은 소송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잘못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오 원장은 “처음에는 산모 측이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3억 5,000만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손해배상 금액은 1년이 지난 후 다시 온 소장에서 14억 5,000만원으로 증가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소송을 당하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며 “그런데 무조건 잘못했다고 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소장을 수십번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 하나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 원장은 “소송을 준비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을 열심히 잘하면 되는데 왜 명확하게 잘못도 없는데 소송을 당해 소송 관련 공부를 하고 잘못이 없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원장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최종적으로 5,000만원을 배상하고 해결됐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처음 산모측이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인 3억 5,000만원이 1년 뒤에 14억 5,000만원으로 불어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재판부의 화해 권고로 5,000만원 손해배상으로 소송이 마무리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송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산부인과 의원은 그동안 분만 환자는 30% 가까지 줄어들었다며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오 원장은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을 그만두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분만으로 인해 언제든지 소송 등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분만 관련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어려운 산부인과 현실은 교육 현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학교수가 후배들에게 산부인과를 권유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교수 "후배들에게 산부인과 권유하지 않은지 10년 넘었다"
경북의대 산부인과 성원준 교수는 “분만 건수는 반토막이 나고 고령산모 증가로 고위험 분만이 증가하고 있다”며 “산부인과 분만에서 뇌성마비가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모성 사망비를 OECD평균보다 낮은데 이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분만 관련 의료 소송에서 의사들의 책임을 묻는 판결이 늘어남에 따라 소송에 대한 부담으로 분만을 기피하고 방어 진료를 하는 것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후배들에게 산부인과 지원을 권유하지 않은지가 벌써 10여년이 되었다”며 “이제는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후배들을 말려야 할지 고민한다”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따라서 “분만 관련 소모적인 소송 증가는 의료진 뿐 아니라 산모 및 향후 출산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출산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서 첫 번은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 사고에 관한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도 "분만 관련 의료사고 배상 국가 책임 강조 필요"
이와함께 분만 관련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법조계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광주고등법원 제주재판부 강동훈 판사는 “의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환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의사가 잘못한 부분이 없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이런 피해는 사회가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처럼 실수에 대해 큰 책임을 지는 직군이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며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사와 환자에게 돌려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책임을 사회가 분담하지 않으면 산과를 기피하는 현상을 지속될 것”이라며 “분만 사고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서울의대)은 “오늘 토론회는 최근 신생아 뇌성마비 관련 12억원의 배상 판결이 계기가 되었다”며 “그동안 산부인과 의사들은 불합리한 면이 있었지만 참고 견뎌왔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고액 손해배상 판결이 계속되면 분만을 담당할 의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설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개인에게 부담하면 우려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액수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저출산 시대에 임산부들이 건강하게 출산하고 의사들이 최선을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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