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대책 ‘응급전원협진망’ 사실상 방치 의료진 희생 강요참여병원과 지자체역할 등 실질 논의 부족..기본 수가보전과 보상 필요【후생신보】 대한심혈관학회가 필수의료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심뇌혈관질환자를 대비하기 위해 제시한 응급전원협진망이 사실상 전문의의 자발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방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국 14개 권역심뇌혈관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개편하고 심뇌혈관질환자 응급 대응을 위해 지역 전문의로 구성된 ‘응급전원협진망’을 구축, 성과에 따라 팀 단위로 사후 보상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회는 제도적 지원과 적절한 보상 등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4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심혈관중재학회 동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학회는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에서 응급전원협진망의 부실을 지적했다.
지난 12월 8일 보건복지부에서 개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공청회’에 따르면, 중증‧응급, 분만, 소아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골든타임 내, 24시간‧365일 상시 필수의료를 제공받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하고 적정 보상을 지급(공공정책수가)하며,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큰 골자이다.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의 일환에는 전국 14개 권역심뇌혈관센터 수술, 시술 등 최종 치료 역량을 갖추도록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면 개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동안 응급의학과만이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갖춘 배후진료과로 인정받던 현실에서 심혈관 중재시술을 ‘응급’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하였으나,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으로는 동일한 응급의료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자, ‘응급전원협진망’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수술 가능한 전문의 부재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협진망을 구축, 신속하게 환자를 전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기 전문가들의 시선은 차갑다. 심혈관중재학회는 이에 대해 “‘응급전원협진망’은 전체 응급환자의 5% 미만에 불과한 심뇌혈관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응급대응체제를 운영할 수 없으니 지역 전문의들간에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응급전원협진망’을 구성하라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이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선결할 과제들이 있다. 지역내 민간병원의 참여, 지자체의 역할 규정, 119 구급대의 출동과 환자 배분의 적절성 제고, 환자 분배후의 치료 악결과에 대한 의료진의 면책 등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논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 학회의 지적이다.
정부는 지역 전문의로 구성된 네트워크 팀 단위의 보상을 위한 시범사업으로서 알아서 협력체계를 구축하면, 성과에 따른 사후 보상을 정책수가로 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심혈관중재학회는 “권역심뇌혈관센터는 전체 응급 심뇌혈관질환자의 20% 정도를 담당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심혈관 중재시술 의사들은 응급 대기를 하면서도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미 일할수록 보상이 적어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시스템 운영방안, 병원간 집행부나 연관 진료과, 소방 등 관련 기관의 조율도 다 알아서 하여야 하며, 협진에 따른 책임소재까지 알아서 해결해야하는 이번 대책이 의료인의 직업적 사명 외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기본적인 수가 보전과 응급 대기 보상이 없는 의료 현장에서 성과에 따른 사후 보상을 필두로 하는 정책수가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휴일과 야간시간에 발생하는 응급환자의 의료공백을 채우고자 병원간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을 시도하는 것도 당직이 왜 시행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심혈관중재학회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 하에서 순환교대 당직이라는 제도하에 환자를 강제 배정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수익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환자에게는 역시 자기가 치료받을 병원과 의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의사에게는 주치의로서 의학적 소견을 환자에게 설명할 권리가 있다”며 “이처럼 여러 권리들 사이에서 환자 배정과 관련한 문제를 ‘응급전원협진망’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다소 현실을 도외시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런 제도 변화와 관련된 법적 책임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정부 부처간의 행정 절차를 조율하고 제도적 지원책 (비용, 이송체제, 법규 등)을 정비하여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고 심혈관중재학회는 말한다. 만일 순환교대 당직을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지금이라도 응급대기를 하면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심혈관 중재의에 대해서 응급대기 수당을 포함한 현실적인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현재 정부에서 야간 응급 수술 보상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뇌동맥류·중증외상 등 응급 수술‧시술 가산 확대 계획 역시 권역응급의료센터 40개소, 상급종합병원에 우선 적용 후 점차 확대하는 수순이 아니라, 응급시술을 하고 있는 모든 지역의 심혈관 중재의들에게 우선 적용될 수 있도록 보편화 방안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응급 심혈관 중재팀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지원은 관련 수가의 인상 및 가산율 상향과 별도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학회는 강조했다.
이 외에도 순환기내과 인력 붕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심혈관중재학회는 강조했다. 학회는 “지난 2022년 순환기내과 전임의 수는 전국 49명으로 갈수록 그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심혈관중재시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전임의 수는 절반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것은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정도 수준의 심각한 인력 감소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대로 가면 곧 10년 이내에 절대적인 의료 인력 공급부족으로 모든 역량을 인력 확보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조덕규 교수는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이제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갖고 하는데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인력부족으로) 사망률 1위 질환인 급성심근경색증을 커버 못하는 지역이 이미 생기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심근경색증 수가를 올려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한 인력구조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안 된다. 의사들의 의무감만 강요해선 해결될 문제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중증 암 환자 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암관리법’ 내 ‘암 관리기금’을 설치하도록 한 것처럼 심뇌혈관질환 관련 정책 실행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기금을 설치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상현 정책이사는 “정책을 하는데 재정이 없어 아무런 사업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권역별심뇌혈관센터 마저도 전체 심근경색증 환자의 20%밖에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나머지는 민간병원이 맡고 있다”며 “국가적 관리를 하려면 심뇌혈관질환 법률에 재정에 관한 부분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후생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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